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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까와 비슷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. 오래되어 빛바랜 벽지와 당연한 듯이 자리 한 벽들. 하지만 문을 들어서기 전에 있던 곳보다는 왠지 좁아 보였다. 길은 거의 일직선으로 나 있었다.

 

”강창호 씨. 벽에 숫자가 새겨져 있어요.”

“나도 보여.”

 

청자색 머리카락의 헌터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. 왼쪽과 오른쪽. 마치 블록처럼 구분된 벽들의 서로 마주하는 한 면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. 총 여덟 개. 그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이랬다.

 

2    0

1    8

4    9

3    5

 

“이게 뭘까요? 무작위로 적어둔 건 아닐 테고요.”

“그래. 허투루 한 낙서도 아닐 테고.”

 

강창호와 김기려가 숫자가 적힌 벽을 살폈다. 손으로 슥, 문질러 보니 손가락에 묻어 나오는 건 없이 메마른 감촉뿐이었다. 강창호가 벽에 집중하는 사이, 앞으로 좀 더 걸어가던 김기려가 그를 불렀다.

 

“강창호 씨.”

“왜.”

“여기 엘리베이터가 있어요.”

 

김기려가 손짓에 따라 이동하니, 과연 옆으로 꺾어지는 길목, 숨겨진 공간에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가 있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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